- 정육점 간판 아래, 25년째 쪄내는 막창순대 한 줄
〈제주 노포 열전〉 다섯 번째 이야기
제주시 건입동, 동문재래시장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금호정육점.
간판만 보면 고기 몇 근 사러 들를 법한 동네 정육점이다.
그런데 이 집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 손에는 정작 고기 대신 검붉은 순대 뭉치가 들려 있다.
▲ 건입동 만덕로 골목에 자리한 금호정육점 ⓒ 탐라뉴스
◆ '수웨', 버릴 것 없던 섬의 지혜
제주에서는 순대를 '수웨'라 부른다. 돼지를 잡을 때 고기 한 점 남김없이 쓰던 옛 섬살이에서 나온 음식이다.
창자에 선지와 곡물, 채소를 채워 넣은 이 음식은 제사상과 명절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다른 지역 순대보다 선지 비율이 높아 색이 짙고 진한 것이 제주 수웨의 특징이다.
찹쌀과 갖은 재료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깊은 맛 덕에, 수웨는 오래전부터 제주의 소울푸드로 불려왔다.
제주 곳곳에는 저마다 개성 있는 순대집이 적지 않지만, 재료나 향이 강해 취향을 타는 경우도 많다. 금호정육점의 막창순대는 그 사이에서 유독 호불호 없이 받아들여지는 맛으로 꼽힌다.
◆ 정육점이, 순대집이 되었다
업주에 따르면 이곳은 정육점 간판을 걸고 장사한 지 44년, 그중 순대를 쪄서 팔기 시작한 지는 25년 됐다. 처음엔 고기를 팔다 남는 재료로 순대를 쪄 서비스처럼 곁들이던 것이 언젠가부터 본업을 앞질렀다.
지금은 반대로 순대를 사러 왔다가 고기를 겸사겸사 사 가는 손님이 더 많다.
정육점이라는 이름은 그대로인데, 가게의 정체성은 이미 순대집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는 셈이다. 제주공항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라 여행 첫날이나 마지막 날, 일부러 시간을 내서 들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간판은 정육점, 줄은 순대 앞에 선다 — 44년 세월이 슬쩍 바꿔놓은 가게의 얼굴.
◆ 막창을 껍질로 쓴다는 것
이 집 순대의 정체는 이름에 그대로 담겨 있다. '막창순대'. 돼지의 소장과 대장을 잇는 부위인 막창을 순대의 창자, 즉 껍질로 쓴다.
▲ 막창을 다듬어 순대를 빚는 손길 ⓒ 탐라뉴스
일반 순대에 쓰는 창자보다 두툼하고 지방이 적당히 붙어 있어, 씹었을 때 저항감이 다르다. 부드럽게 씹히다가도 끝에 탄력이 남는다. 그 안을 선지와 찹쌀, 고기, 당면이 채운다. 단면을 가르면 검붉은 선지의 색이 짙게 올라오는데, 그 진한 색이 곧 이 순대가 얼마나 재료를 아끼지 않았는지를 보여준다.
▲ 선지와 찹쌀이 꽉 들어찬 막창순대 단면 ⓒ 탐라뉴스
주문이 들어오면 길게 쪄둔 순대를 한 줄 꺼내 그 자리에서 직접 썬다. 막창 껍질이 얇게 찢기지 않고 촉촉하게 살아 있어, 칼이 지나가는 순간에도 재료의 신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순대는 저울에 무게를 달아 판매하는데, 한 줄에 대략 7천 원에서 1만 원 선이다. 썰린 순대는 투명 포장지에 꼼꼼히 싸여 손님 손에 넘어가는데, 차 안에서 열어봐도 김과 찹쌀의 윤기가 여전할 만큼 열기를 오래 품는다.

▲ 갓 썰어 포장한 막창순대 한 줄 ⓒ 탐라뉴스
◆ 앉을 자리 없이도 줄을 서는 이유
금호정육점은 매장에서 먹고 갈 수 없다. 오롯이 포장만 가능한 구조다. 테이블도, 의자도 없다. 순대를 사서 집으로, 숙소로, 차 안으로 가져가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집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내장 음식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으면서도 막창은 질기지 않고 입에 착 붙는다는 평이 많다.
한때는 동네 사람들만 아는 조용한 가게였지만, 이제는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제주 가면 꼭 포장해와야 할 순대"로 통한다.
영업시간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일요일은 정기 휴무다. 준비한 물량이 소진되면 그보다 일찍 문을 닫는 날도 있어, 전화로 재고를 확인하고 오는 손님이 적지 않다.
따뜻하게 데운 순대에 소금 조금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여기에 제주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혼자 즐기는 술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이야기가 여행 후기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 데운 순대에 소금 한 점, 술 한 잔이면 완성되는 상 ⓒ 탐라뉴스
◆ 육지까지 넘어가는 제주 맛
입소문은 섬을 넘었다. 서울을 비롯한 타지에서 택배 주문이 들어오고, 제주의 몇몇 식당은 이 집 막창순대를 직접 받아 메뉴에 올린다. 제주의 유명 국숫집 '미담국수'가 이곳 순대를 납품받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울의 이름난 제주 음식 전문점에서도 같은 순대를 받아 쓴다고 한다. 정육점 한 곳에서 시작한 순대가, 어느새 다른 가게의 상차림에도 이름을 올리게 된 셈이다.
거창한 마케팅이나 방송 출연 없이, 순전히 맛으로 퍼진 소문이다. 44년 정육점의 뒷심이 25년 순대 장사를 이렇게 멀리까지 데려다 놓았다.
④ 〈제주 노포 열전 ④〉 다맛국수 (화북)
③ 〈제주 노포 열전 ③〉 꿩 대신 닭? 꿩이 먼저다 — 동문시장 '골목식당'
② 〈제주 노포 열전 ②〉 자리도 이름도 그대로, 70년을 이어온 한 그릇 — 삼도이동 '송림반점'
주소: 제주시 만덕로 24
영업시간: 월~토 10:00~17:30
휴무일: 매주 일요일
가격: 순대 한 줄 약 7천~1만 원(무게 계량 판매)
포장 전용, 매장 취식 불가 / 택배 주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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