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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제주 노포 열전 ③〉 50년이 넘은, 동문시장 골목이 지킨 임금님 국수 — 이도1동 '골목식당'

  • 강민수 기자
  • 입력 2026.07.0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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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밀 100%라 젓가락에 자꾸 끊기는 면발 그 불편함이 곧 진짜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찾는 집

[제주 노포 열전] 연재 ③ — 제주의 오래된 밥집을 찾아갑니다

 

제주의 식문화는 화려한 양념을 앞세우지 않는다. 

척박한 땅이 내어준 재료 그대로의 거친 숨결을 담아내는 쪽에 가깝다. 

이도1동 동문시장 안쪽 골목의 '골목식당'이 반세기 넘도록 지켜온 꿩메밀국수가 꼭 그렇다. 

임금 수라상에 오르던 꿩은 정작 그릇 안에 살점으로 남지 않는다. 

잔가시 탓에 살은 뒤로 물러나고, 뼈째 고아낸 육수와 메밀 100%로 뽑아 툭툭 끊어지는 면만이 사발을 채운다. 

불편해 보이는 이 방식이 오히려 이 골목을 오래 지켜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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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 수라상에 오른 진상품, '생치'와 '건치'

조선시대 제주는 말과 감귤, 전복과 함께 꿩을 조정에 바치는 주요 진상 지역이었다. 거친 바람을 맞고 자란 제주 야생 꿩은 살이 단단하고 풍미가 좋아 귀하게 대접받았다고 전해진다. 겨울에는 얼린 생꿩을 '생치(生雉)'로, 평소에는 말린 고기를 '건치(乾雉)'로 나눠 올렸고, 이는 수라상의 탕과 찜, 육포의 재료가 됐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여기서 비롯됐다. 본래 설 떡국은 꿩고기로 육수를 내야 제맛이지만 구하기 어려워 닭으로 대신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역설적으로 이 속담은 당대 꿩고기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되짚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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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땅이 맺어준 인연, 꿩과 메밀

사면이 바다이고 땅은 현무암 천지였던 제주에서 쌀농사는 애초에 어려웠다. 

그 척박한 토양과 태풍 속에서도 짧은 기간에 꿋꿋이 자라준 곡물이 메밀이다. 

제주는 지금도 국내 손꼽히는 메밀 산지로, 강원 봉평이 이름값을 얻었지만 실제 생산량은 제주가 앞선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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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과 꿩은 성질에서부터 짝을 이룬다. 

한의학에서 메밀은 몸의 열을 내리는 찬 성질로 보고, 꿩고기는 반대로 기운을 북돋우는 따뜻한 성질로 친다. 두 재료가 만나면 서로의 결을 보완하며 균형을 맞춘다. 글루텐이 없어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에 기름기 적은 꿩 육수가 더해지면, 자극 없이 속을 채우는 한 그릇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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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 100%로 뽑아 툭툭 끊어지는 면과 뽀얀 꿩 육수 ⓒ 탐라뉴스

 

 

◆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드는 국수

이 집 국수는 메밀가루를 뜨거운 물로 익반죽해 툭툭 썰어낸 둔탁한 면이 기본이다. 

밀가루도 전분도 섞지 않는다. 뼈째 뭉근하게 고아낸 육수는 뽀얗고 걸쭉해 수프에 가깝고, 그 위에 가늘게 찢은 꿩고기와 채 썬 무가 얹힌다. 면 사이의 무는 거친 메밀면의 완충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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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리려 하면 이내 끊어지기에, 이곳에서는 자연스레 숟가락을 든다. 국물과 면을 함께 떠먹으면 메밀 특유의 구수함이 번지고, 그 뒤를 담백한 꿩 육수의 감칠맛이 감싼다. 양념에 익숙한 입에는 첫술이 다소 심심할 수 있지만, 씹을수록 재료 본연의 맛이 또렷해진다.

"진짜 메밀로 한 거 맞느냐"는 손님들의 되물음은 이 집에서 낯설지 않다. 찰기 없이 끊어지는 면이 도리어 의심을 부르는 역설이 여기서 벌어진다.

◆ 낮술 한 잔에 해장까지, 도민의 순서

단골들 사이에는 오래된 순서가 있다. 먼저 꿩구이를 안주 삼아 낮술 한잔을 곁들이고, 마무리로 꿩메밀국수를 시켜 해장까지 끝낸다. 마늘로 두툼하게 밑간한 꿩고기를 통째로 불판에 올려 굽는 모습에서, 계량된 레시피보다는 손에 익은 감으로 이어온 조리법이 엿보인다. 

메밀에 든 타닌 성분이 해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도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전해진다.

시원하고 깊은 육수는 속을 편안하게 다스린다. 술과 해장을 한 끼에 해결하는 이 조합은 관광객의 코스라기보다 도민의 오랜 습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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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로 밑간해 통째로 구워내는 꿩구이 ⓒ 탐라뉴스

 

◆ 20% 오른 가격표, 그래도 이어지는 발길

가게 안에는 오래전 손으로 눌러쓴 차림표가 아직 붙어 있다. 꿩메밀칼국수 10,000원, 꿩구이 30,000원. 그러나 현재 판매가는 각각 12,000원과 35,000원이다. 

국수는 20%, 구이는 약 17%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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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물가와 식재료비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숫자로 마주하면 체감 폭이 작지 않다.

그럼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가격표보다 앞서는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세기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맛에 대한 신뢰다.

◆ 반세기, 동문시장 골목을 지킨 사람들

간판도 홍보도 요란하지 않은 이 식당은 동문시장 안쪽 한적한 골목에 있어 처음 찾는 이들은 헤매기 일쑤다. 그럼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건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단골들 덕분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왔던 이가 장성해 다시 찾아와 그때 그 맛을 확인하고 간다는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



 

가게 벽 한편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사인 접시가 나이테처럼 쌓여 있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날짜가 적힌 접시들 사이로 "KBS 6시 내고향"과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출연을 알리는 글귀도 눈에 띈다. 방영 이후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며 타지 손님들의 발길도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옆으로는 오래된 신문 스크랩과 손으로 눌러쓴 제주 방언 시, 메밀꽃밭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낡은 벽이 곧 이 집의 이력서인 셈이다.

메뉴판에는 꿩탕과 꿩샤브, 메밀국수 등 여러 이름이 적혀 있지만, 실제로 내는 것은 꿩구이와 꿩메밀칼국수 두 가지뿐이다. 손이 많이 가고 수익도 크지 않은 조리 방식 탓에 제주에서 꿩 전문점은 손에 꼽을 만큼 줄었다. 그 사라져가는 자리를 이 골목의 작은 식당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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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손님들의 사인 접시와 신문 스크랩이 걸린 벽 ⓒ 탐라뉴스

◆ 이용정보

대표메뉴는 꿩메밀칼국수와 꿩구이 두 가지다. 낮에는 꿩메밀칼국수, 저녁에는 꿩구이를 찾는 손님이 많다. 규모가 크지 않고 현지인 단골이 많아 방문 전 예약을 권하는 편이다.

골목식당 (클릭시 네이버지도로 이동합니다.)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 63-9 (이도1동 1347-1, 동문시장 내)
[전화] 064-757-4890
[영업시간] 매일 10:00 ~ 20:00 · 연중무휴
[대표메뉴] 꿩메밀칼국수 12,000원(과거 10,000원) · 꿩구이 35,000원(과거 30,000원)
[참고] 메뉴판에 꿩탕·꿩샤브·메밀국수 등이 표기돼 있으나 현재는 꿩구이·꿩메밀국수만 판매
[주차] 매우 힘듬, 유료주차장 이용
ⓒ 탐라뉴스 & tamra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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