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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제주 노포 열전 ①〉 반세기, 골목을 지킨 한 끼 — 일도2동 '태화식당'

  • 강민수 기자
  • 입력 2026.07.0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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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문을 연 노부부의 식당, 화물차 기사도 뱃사람도 알음알음 찾던 항구 골목의 밥집 — 화려함 대신 반세기를 택한 맛

〈제주 노포 열전 ①〉 — 세월을 견딘 가게를 찾아가는 연재의 첫 글이다.

제주항을 등지고 일도2동 골목으로 접어들면, 걸음의 속도가 저절로 느려지는 구간이 있다. 노란 외벽 위에 둥근 간판 하나가 조용히 걸려 있다. '태화식당'. 그 아래 나무 간판에는 '40년 전통'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지만, 이 집이 실제로 문을 연 것은 1975년 1월이다. 올해로 반세기를 넘겼으니, 간판은 세월을 다 따라잡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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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구가 먹여 살린 밥집

태화식당의 첫 손님은 관광객이 아니라 항구의 노동자들이었다. 화물차 운전사들이 제주항을 드나들며 끼니를 때우던 자리, 항운노조 조합원과 뱃사람들이 알음알음 찾던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화려한 상차림이 필요 없던 손님들이었다. 뜨끈한 국물 한 그릇, 밥 한 공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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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보도(2015년)에 따르면 산지천 인근 탐라광장 조성사업으로 원래 자리를 내주고 지금의 골목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자리는 바뀌었어도 부부의 손맛과 단골의 발길은 그대로 옮겨졌다. 벽에는 그 시절 기사 스크랩과 사업자등록증, 영업신고증이 나란히 붙어 있어, 지나온 시간의 두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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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는 안주인이 말없이 손을 움직인다. 메뉴판은 요란하지 않다. 문 앞 유리에 적힌 글자만 봐도 이 집의 성격이 드러난다. 김치찌개, 된장뚝배기, 야채찌개, 제육볶음, 그리고 여름 한철 자리물회와 한치물회.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반세기 동안 같은 얼굴을 지켜온 메뉴들이다.

 


◆ 짙은 간장빛 오삼볶음, 집밥의 정석

이 집의 얼굴은 오삼볶음이다. 양파와 돼지고기, 오징어가 투박하게 볶여 나오는데, 양념빛부터 여느 제육볶음과 다르다. 고추기름 대신 깊은 간장 베이스를 쓰고, 그 위에 후추 향이 짙게 돈다. 접시에 담긴 색은 붉은빛이 아니라 진한 고동색에 가깝다.

맛의 순서도 다르다. 짠맛이 먼저 치고 나오는 대신 구수한 단맛이 먼저 온다. 씹을수록 어디선가 먹어본 듯한, 오래된 가정식 레시피의 기억이 겹쳐진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티가 나는 두툼한 고기와 오징어, 그리고 국내산 원료를 고집한다는 벽면 표기가 이 맛의 배경을 설명해 준다.

고추기름 대신 깊은 간장, 매운맛 대신 구수한 단맛 — 태화식당식 오삼볶음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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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추 도는 야채찌개, 미각보다 기억을 건드리는

야채찌개에는 두부, 당근, 대파, 콩나물 같은 재료가 아낌없이 들어간다. 한라일보 보도에 따르면 돼지 사골로 국물을 우려내는 것이 이 집 야채찌개의 별미라고 한다. 뼈에서 우러난 진한 육수에 계란을 풀어 넣고, 마지막으로 후추를 흩뿌린다.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자극으로 승부하는 찌개가 아니라, 오래 끓인 시간으로 승부하는 찌개다. 이런 음식은 혀보다 기억을 먼저 건드린다.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밥상, 누군가에게는 타지에서 그리워하던 집밥의 맛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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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오는 밑반찬도 허투루 놓이지 않았다. 콩나물무침, 깍두기, 김치, 오징어무침, 어묵볶음까지 다섯 가지가 골고루 상에 오른다.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이지만, 하나하나 간이 맞고 손이 간 흔적이 뚜렷하다. 벽면 차림표 아래에는 쌀·배추·고추가루·돼지고기 모두 국내산이라는 표기가 붙어 있다. 반세기를 버틴 식당이 재료에서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 정직한 가격표, 그리고 두 가지 아쉬움

벽에 걸린 차림표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김치찌개·된장뚝배기·야채찌개·생선지리가 각 10,000원, 매운탕 10,000원, 자리물회·한치물회가 각 15,000원, 제육볶음·오삼볶음이 2인분 기준 각 20,000원이다. 반세기 노포치고는 소박한, 그리고 정직한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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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처음 찾는 이라면 염두에 둘 점이 두 가지 있다. 영업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여서, 저녁에 반주 한 잔 곁들인 식사를 기대했다면 시간이 맞지 않는다. 휴무는 매주 일요일이다. 또 좁은 골목 안이라 주차가 쉽지 않다. 항구 노동자들의 밥집으로 시작한 곳이니, 애초에 저녁 장사나 넓은 주차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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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세기 뒤에도 남는 것

화려하지 않은 상차림이, 지금은 오히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함이 되었다. 유행하는 메뉴를 좇지 않고, 매일 같은 방식으로 국물을 우리고 반찬을 무쳐온 시간이 쌓여 지금의 태화식당이 되었다. 다 비운 그릇 옆에 제주 막걸리 한 병을 놓고 보면, 이 집이 반세기 동안 무엇을 지켜 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항구를 드나들던 화물차 기사와 뱃사람들의 자리는, 이제 그 골목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자리로 남아 있다.

 

태화식당 (클릭하면 네이버 지도로 연결됨) 

제주시 일도2동 고마로11길 11

전화 757-0820

영업 오전 9시 ~ 오후 4시 · 매주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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